<Dear Cabinet>

2023.11.24 - 12.29 

서정아트는 2023년 11월 24일부터 12월 29일까지 김덕한, 나난, 박지은, 사이먼 고, 송민규, 신봉철, 안다빈, 이미주, 이병호, 이시산, 재진, 전아현, 최민혜, 피정원, 그리고 홍성준으로 구성된 총 15인의 작가들과 함께 《DEAR CABINET》 전시를 개최한다. 본 전시는 전시장 공간 자체를 하나의 큰 캐비닛으로 상정하고 그 안에 작가들이 가장 귀중히 여기는 것들을 담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16-17세기 새로운 문명을 맞이한 인류는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한 공간에 진열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만난 세상을 만끽하고 그로부터 스스로 취향과 정체성을 확립하곤 했다. 독일에서는 경이로운 저장소를 의미하는 ‘분더캄머(Wunderkammer)’가,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즉 캐비닛이 바로 그 공간이었다. 이 캐비닛은 단순히 수집의 결과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예술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지적(知的) 작업이 끊임없이 교호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하며 오늘날 미술관과 박물관의 전신(前身)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뮤지엄의 모체인 캐비닛이 예술을 향한 지적 호기심과 감상의 즐거움을 충족시켜주는 작은 세계(소우주)였다는 것에 착안하여 각자의 호기심의 방을 채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시의 동선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된다.
첫째로 전시장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작가 15인의 작품과 그 옆에 마치 은밀한 비밀을 감춘 것처럼 놓여있는 개별 캐비닛을 만날 수 있다. 작은 캐비닛 안에는 작업에 임하는 태도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유한성, 물성, 존재성 등 제각기 소중히 여기는 개념에 대한 차근한 고민은 작품과 하나가 되어 호흡한다.


둘째는 전시장 초입에서 만나는 3면으로 둘러진 디귿 형태의 커다란 캐비닛 공간이다. 개별 캐비닛에 개개인의 사유의 한 순간이 박제되듯 담기었다면, 큰 캐비닛 공간에는 사유로 다다르는 무수한 시간과 지난한 과정이 담기어 있다. 과정은 그야말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재 속으로 흩어지고 부스러기만 남긴다. 이 부스러기가 버려질 때 비로소 작업이 존재하게 된다. 이 캐비닛 공간은 예술적 상상력이 확장되고, 창작이 이뤄지고, 다시 영점으로 돌아가는 고리를 붙잡아 부재와 존재 사이의 여백을 메운다.


때때로 소중한 것들은 명징하지 않고, 휘발성이 강할 때 우리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그것을 다시 기억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과정 자체의 귀함에 주목한다. 하나의 작품이 누군가의 캐비닛에 진열되기까지 어떤 시간을 거치고, 어떤 내밀함을 품고 있는지를 새로이 들춰보는 자리이다. 15인의 작가들이 각자의 언어로 재구성한 가장 소중하고 솔직한 세계를 시선에 담아가길 바란다.